발달. Development.
인간의 발달은 생애에 걸쳐 이뤄지지만, 우리가 배우는 발달에 관한 학문과 이를 측정하는 것들은 훨씬 아동기에 치중되어 있고, 그 때문인지 아이의 발달을 지켜보고 돕는다는 전문가 사람들이 아이에 대해 고려할 때에는, 그 아이의 청소년기 이후의 삶과 청장년기, 노년의 인생을 발달의 선상에 있는 흐름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은 듯 하다. 하긴, 소위 전문가라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의 인생을 거기까지 살아보지 않아서 통찰이 미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사회성숙도(Social Maturity Scale; SMS)라는 오래되고도 좋은 발달 체크 도구가 있다. 전반적인 발달을 일상과 사회영역까지 아우르고 있어서 인간의 발달에 통찰을 갖기에 참 좋은 평가도구라 생각한다. 게다가 0세부터 20세경까지의 발달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 이를 평가할 수 있다는 점도 참 좋다. 그런 SMS의 만 3-4세경에 발달하는 수행항목 중 Locomotion(이동)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L. 이웃집을 혼자 갈 수 있다............( )
( ) 안은 수행여부를 플러스, 마이너스 등의 정해진 기호로 표시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걷는 데에 어려움이 없는 이 연령 전후의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예로 든 문항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표시 되는 경우가 많다. 장애가 없거나 경하고, 더 높은 연령의 항목을 수행해도, 유독 이 '이웃집 혼자 다니기' 항목은 '수행불가', '경험 없음'으로 채점이 된다.
이 문항 내용을 볼 때,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분명 이동능력을 보고자 locomotion 영역임을 문항의 왼쪽에 'L'로 표시하고 있으나, 문항의 문맥적 의미는 옆집에 혼자 놀러가는 데 필요한 사회성을 포함한다. 물론 SMS에서 이 항목을 채점할 때, '+No (기회가 주어진다면 수행 가능할 것이라 여겨지는 항목)' 로 표시할 수도 있겠지만, SMS 내용상 이 문항이 Locomotion 영역에 해당한다는 데 문제가 생긴다.
이 문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이웃집 혼자 가기' 수행이 어렵다고 평가되는 아이들을 말 그대로 이동(locomotion) 기능이 어렵다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만 3-4세. 우리나라식 나이로는 4-5-6살이다. 내 기억에는 분명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동네 친구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여러가지 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동네 친구가 집 앞에 와서는 "**야, 노올자~~!"라고 부른 기억도 있다. 지금 우리 동네, 주변에도 이웃집에 놀러 다니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4-6살 아이가 혼자 놀러 갈 수 있는 옆집이 적고, 놀러 가려는 친구집은 멀어서 어른이 함께 가야만 갈 수 있는 상황이 더 많아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친구집이나 이웃집에 아이가 놀러라도 갔다 치면, 민폐가 안될런지, 혹시 사고가 생기지는 않을런지 걱정도 된다.
하고싶은 이야기는, 사회성숙도가 한국에서 사용된 지 어느덧 수십년. 사회적 정황과 문화로 인해 달라진 수행이 이동성이라는 운동영역으로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현 시대에 맞는 이동성 항목을 개발할 것이냐, 아니면 '이웃집 혼자 가기'라는 이 항목을 사회성과 이동성 두 가지로 볼 것이냐, 또한, 그것이 타당한 관점이냐에 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필요하다.
물론 사회발달로 인해 달라진 것은 사회성의 변화뿐 아니라 운동영역에도 이른다. 만약 100년 전쯤이라면아동 청소년기의 사회성숙항목을 평가하는 데 '옷고름 매기', '물통 운반하기' 등이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편리해지면서 우리는 매듭짓지 않아도 되는 옷을 입으며 옷고름 매는 방법을 잊어간다. 물통을 들거나 이고지고 운반할 근력을 잃어간다. 안타깝지만.. 소실되어 간다.
지금 우리나라의 초등학생들의 교과서 뒤에는 가위질 할 필요 없이 잘 재단 된 학습용 스티커들이 있다. 아이들이 가위질을 잘 못하고 느려서 개발된 것인지, 이런 교구가 개발되면서 아이들의 가위질이 점점 어색해지는 것인지는 앞으로의 수행변화가 증명할 것이다. 대신, 키보드 자판 두드리기, 마우스 조종하기위한 기술들은 많이 향상되는 듯하다. 내가 만났던 뇌성마비 아이도, 연필로 억지로 글씨를 쓸 때보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자신의 내면을 훨씬 많이 드러내어서 사회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기능과 맞물릴 때 좋은 수행이 됨을 알기도 한다. 맞다. 사회와 개인이 함께 어우러져 지금의 발달수행이 어디쯤,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아는 것이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더더욱 아이를, 인간을 평가한다고 할 때는 경험, 문화, 가치, 개인의 성장사, 환경 등을 고려할 수 있는 만큼 고려해야 한다. 인간은, 인간의 수행은 그렇게 복잡하다. 평가를 한다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하나의 영향을 미치는 환경요인임을 늘 성찰해야 한다.
며칠 전, 서울대 조국 교수님이 트윗에서, 그 분 선배의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이를 다시 응용하여 재인용하고자 한다.
"인간을 평가하는 데는 '삼찰'이 필요하다. 먼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찰'. 그리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 그리고 난 다음 전체를 잘 아우르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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