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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9일 토요일

위험을 만날 때, 피하는 본능행동: 숨거나 도망가거나, 동물에서 인간으로.

2011년 가을경,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자문을 요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요청받은 내용은 "불이 나면 5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벽장이나 침대 아래로 들어가서 숨어버려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숨는 이유가 무엇일까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로 문의를 하였고, 심리적인 문제라기보다는 행동적인 이유가 신경생리적이거나 발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으로 저희 연구소로 문의가 전달되어 왔습니다.

아이들이 불이 나면 왜 도망가지 않고 벽장 속으로 숨는가?
이 고민은 감각적인 예민함으로 풀면서도 행동적인 반응으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이 난다는 것은 위험상황이고, 감지하는 것을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여 반응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인데, 왜 연령에 따라 차이가 날까... 어린 아이들이 더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것인가? 그러면 5살이 넘는 아이들은 왜 도망을 가고, 어린 아이들은 왜 숨는가... 이것을 고민하면서 찾아보고 정리한 내용과 함께 오늘의 생각을 쓰고 싶었습니다. 슬픈 마음을 정리하고자 하는 스스로에 대한 위안이기도 합니다...

불이 난다는 상황은 위험상황입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은 위험 상황에서 반응을 합니다. 척수동물은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 그 자극에 대해서만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작용을 합니다. 이보다 조금 더 신경경로가 많은 동물들은 변연계에서 외부 자극이 먹이인지, 위험인자인지를 순간적으로 평가하여 몸을 보호하는 반응을 합니다. 먹이라면 달려들어 잡아먹고, 위험이라면 도망가거나 싸웁니다. 이를 싸움-도피(fight - flight)반응, 또는 방어반응(Defense response)이라고 합니다. 인간도 위험상황에서는 대뇌보다는 변연계의 방어반응 시나리오를 따르게 됩니다.

학자들은 인간의 방어반응이 포유동물이 위험상황에 대처하는 방어반응 시나리오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정리했고, 이를 인간의 행동이름으로 번역해서 다음 12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그 내용으로는 1. 숨기(hide, cover), 2. 얼어붙기(freeze, stand still), 3. 도망가기(flee, try to escape), 4. 소리지르기(yell, scream), 5. 도움 요청하기(ask for help), 6. 위협하기(threaten to attack), 7. 공격하기(attack or flight), 8. 진짜 위험인지 살펴보기(investigate to see if the danger is real, check out), 9. 무기 찾아들기(look or find for something to use as a weapon), 10. 사과하기(apologize), 11. 협상하기(negotiate), 12. 자비를 구하기(beg for mercy)가 있다고 합니다1).

동물들의 방어반응 시나리오는 위의 내용 중에서 약하고 작고 힘이 없는 동물일수록 숨기나 가리기, 얼어붙기를 하며, 조금 더 크고 힘이 있는 동물이 도망을 가고, 좀 더 크고 힘이 있는 동물은 도망을 가다가 구석에 몰리면 상대를 위협하거나 공격하는 시나리오를 발휘한다고 합니다. 카멜레온처럼 위험을 피해 주변 환경처럼 변색을 하는 동물도 있는가 하면, 작은 동물들은 낙엽을 덮거나 땅을 파고 들어가서 숨습니다. 사슴은 적이 오면 무조건 도망을 가고, 말은 도망을 가다가 적이 다가오면 발길질을 하구요. 물론 사자같은 동물은 먹이를 찾아 공격을 주로 하겠지만, 비슷한 상대와 영역싸움을 하게 되면 위협하고 공격을 하겠지요.

아이들의 경우는 약해서 숨거나 도망가는 동물의 수준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5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은 힘이 없고 약한 동물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 같습니다. 도망가기에는 당장 보이는 숨을 장소로 들어가거나 덮어서 가리는 것이지요. 좀 더 큰 어린이들은 능력과 몸이 발달하여 도망을 가는 시나리오를 택합니다. 물론, 너무 무섭고 도망갈 장소가 없고 위험의 발생지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면 어른이라도 도망도 가지 못하고 얼어붙게 된다고 합니다2).

다행인 것은, 아이들에게 불이 나고 연기를 보면 밖으로 대피하는 것이라고 교육을 하고 나면 5살보다 어린 아이들도 밖으로 나오는 행동(action)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응이 수행이 되는 순간이랄까요.. 이 점은 인간이 동물성을 지니되 인간이라는 고등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희는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 재난 대피 훈련으로 책상 아래로 들어가는 훈련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책상 아래로 들어가는지, 재난의 종류를 정확히 설명으로 들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공습에 대피하는 훈련이었던 듯한 짐작을 어렴풋이 해 봅니다. 지진... 대피와 방법이 비슷하기는 한데, 일본식 교육의 흔적이었을까요?

살면서 위험이나 두려움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방어반응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나요? 어떤 사람들은 꼼짝없이 가만히 있고, 어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어떤 사람들은 도망을 가고, 어떤 사람들은 위협하고 공격하며, 어떤 사람들은 위험을 살피고, 대비하고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찾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하고 위합니다. 이 순서는.. 약자에서부터 진짜 강자까지를 임의로 써 본 것입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대로 위험에 노출되어 희생되었고,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도망을 가고, 위험에서 구한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험을 2차, 3차 자기의 위험으로 감지하여 자기를 살리고자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으르렁대고 위협하는 동물성을 봅니다. 그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은 대체로 기대되기를 위험의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위험을 살펴야 하는 사람들이고, 위험을 막고 대처하기 위해 방법과 무기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역할에 맞는 위험 대응 시나리오를 맞춰 쓰지 못하고서는 이 밀림의 왕이 되겠다고 사자의 탈을 쓰고 군림하고, 때로는 양의 탈을 쓰고 온순한 척 다가오고, 때로는 카멜레온처럼 그 색을 변색하고서는 주시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하이에나가 아니겠습니까.

아니, 어쩌면.. 하이에나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진짜 대책이 없는 것은, 약자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강한 자리에 있으려 하는 '인간' 그 자체인 것을요.


구석으로 숨는 작은 동물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인터넷에서 볼 수 있죠. 숨는 것이 귀여워 보여도, 이것은 동물들의 본능적인 행동 시나리오입니다.

아이들에게 증명된 것처럼, 인간이기 때문에 지성을 사용하면 필요하고 적절한 방어 시나리오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은, 우리에게 희망적인 가능성일까요?



참고 자료

1) Caroline Blanchard D, Hynd AL, Minke KA, Minemoto T, Blanchard RJ. Human defensive behaviors to threat scenarios show parallels to fear and anxiety-related defense patterns of non-human mammals. Neurosci Biobehav Rev. 2001; 25: 761-770.

2) Shuhama R, Del-Ben CM, Loureiro SR, Graeff FG. Defensive responses to threat scenarios in Brazilians reproduce the pattern of Hawaiian Americans and non-human mammals.Brazilian journal of medical and biological research. 2008 ; 41: 324-332.

댓글 1개:

  1. 유치원 교육과정 운영 지원을 위한 유아 재난대비·생활안전교육 프로그램
    https://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7&ved=0CGAQFjAG&url=http%3A%2F%2Fwww.moe.go.kr%2Fweb%2F100010%2Fko%2Fboard%2Fdownload.do%3FboardSeq%3D106608&ei=3VBSU_OvCsOKlQWRloGoDw&usg=AFQjCNFd5ukP09jNPudSmZBgh0We_MmS0Q&sig2=fpKkMFEhDIr6C2_JDy7l7Q&bvm=bv.65058239%2Cd.dGI&cad=rj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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