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인이 아니다. 타인은 내가 아니다.
헬스워커로, 보건인으로써, 특히 생활건강분야의 전문가로써, 이 공통언어를 더 많이 공유하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한 듯하다. 그래도 한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하며 대인관계를 배우며 소통할 뿐이지, 절대, 절-대 내가 남이 될 수 없다! 내 부모도, 형제도, 자녀도 내가 될 수 없고 배우자도, 연인도, 친구도 내가 될 수 앖다.
남녀평등이나 장애인식 등은 모두 관계를 말한다. 그런 인식 운동이나 인간을 만나는 한 분야의 전문가 등이 의견과 식견을 펼칠 때 볼 수 있는 기술의 측면이 있다. '나'의 이야기를 나로부터 하면 괜찮지만, 내가 '타인'을 나처럼 묘사하고 아는 듯 말하고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는 모든 말은 참이 아니고 게다가 폭력적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여기가 미국이라 치자. 나는 한국인에 몽골인종이다. 그런데 이웃 미국인에 코카서스 인종인들이 한국인에 대해 자기 입장에서 보고 느낀 것으로 책을 쓰거나 입장 표명을 했는데 나에게 그것이 폭력적이라 여겨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참으로 먼저 짐작하고 판단 먼저, 행동 먼저 엉뚱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의 상사들이, 어떤 경우의 많은 선생(먼저 난 사람)들이, 기관에 속한 사람들이 '가족'같이 #친밀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상사에게, 선생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가족'처럼 친밀하게 다가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상사에게, 선생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가족'처럼 친밀하게 다가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가족같은 #친밀함 은 모든 관계에서 적절한가? 친밀함은 수준이 있다.
친구 관계라면 친구만큼의 친밀함.
직장인간의 관계라면 직장인 관계만큼의 친밀함.
이웃이라면 이웃만큼의 친밀함.
가족이라면 가족만큼의 친밀함.
친구 관계라면 친구만큼의 친밀함.
직장인간의 관계라면 직장인 관계만큼의 친밀함.
이웃이라면 이웃만큼의 친밀함.
가족이라면 가족만큼의 친밀함.
친밀함과 같은 말은 #거리 다. 인간과 인간의 친밀함은 인간대 인간의 관계의 적절함을 파악하고, 그 관계만큼 거리를 조절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이것이 대인관계형성이며, 대인 상호작용기술이다.
거리조절의 실패는 대인관계와 대인기술의 실패로 이어진다.
공식적인 인물에게 낯선 사람에게처럼 대하는 거리조절 실패. 아이들이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이 관계기술을 배운다. 복도를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간단히 목례하라고. 길을 갈 때 낯선 사람들은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이것이 위배되는 상황이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장소에서 많이 일어난다. 타인에게, 낯선 타인에게 적절하지 않은 지나친 친밀함과 감정표현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부분은 장애 비장애보다는 문화와 연령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 같아보인다. 그 표현이 문화와 세대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도 갈등을 줄이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타인의 대인관계 거리조절 실패에 영향을 덜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주고 받는 대인관계의 상호작용기술은 3-4회의 적절한 거리 유지로 상대의 거리조절 실패를 더 가중시키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학교와 직장과 기관과 시설.
이런 장소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공식적인관계 라고 한다. 우리는 공식적인 관계를 먼저 확립한 뒤에, 그 다음에서야 비로소 비공식적인 관계나 친밀한 관계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친밀한 관계나 비공식적 관계, 가족관계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러니 모든 공식적 관계를 그 다음단계로 이어가면 탈진한다.
이런 장소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공식적인관계 라고 한다. 우리는 공식적인 관계를 먼저 확립한 뒤에, 그 다음에서야 비로소 비공식적인 관계나 친밀한 관계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친밀한 관계나 비공식적 관계, 가족관계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러니 모든 공식적 관계를 그 다음단계로 이어가면 탈진한다.
공식적인 관계는 대면대면할 수도 있고, 편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덜 피곤하게 다수가 함께할 수 있다. 집단이 함께 있는 공식적인 공간은 공식적인 대인관계의 거리와 그 수준만큼의 친밀함이 필요하다.
이런 내용은, 보편적인 관계 건강 지식으로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건강의 지향과 결론은 신체적 건강보다는 관계 건강, 적절한 관계, 손에 꼽는 친밀함의 존재라 하는데.
ICF의 활동참여 기능의 챕터 7장 대인상호작용과 대인관계.
작업치료 프레임워크의 작업수행 중에 일어나는 사회적상호작용기술.
작업치료 프레임워크의 작업수행 중에 일어나는 사회적상호작용기술.
두가지를 조합하면, 생활과 삶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관계를 조금은 물리적 관계나 수학적 관계로 설명을 대치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이해가 높아지면 갈등이 감소하고 문제가 예방되지 않을까.
#가족같다 는 말을 경계해야 한다.
가족은, 배우자와 연인관계 다음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다. 그 어려운 대인관계를 친구와 한다? 직장 동료와 한다?
가족은, 배우자와 연인관계 다음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다. 그 어려운 대인관계를 친구와 한다? 직장 동료와 한다?
#이중관계를 경계해야 한다.
부모가 교사가, 치료사가 될 때가 있다. 가족이 전문가의 입장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과연 그것이 타당한지, 건전한지, 적절한지 매섭게 판단해야 한다. 부모가 매니저가 될 수 있는지. 그럴 때 어떤 관계가 희생되는지.
부모가 교사가, 치료사가 될 때가 있다. 가족이 전문가의 입장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과연 그것이 타당한지, 건전한지, 적절한지 매섭게 판단해야 한다. 부모가 매니저가 될 수 있는지. 그럴 때 어떤 관계가 희생되는지.
관계는 어느 정도 절대양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평등하게 양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모와 관계가 아주 좋으면, 상대적으로 엄마와 소원하기도 하단다. 더 살펴보면 소원함이 아니라 관계의 내용차이일 수 있다. 엄마와는 먹고, 씻김 당하고, 잠자는 일상이 더 많이 형성된 관계인데, 이모는 엄마보다 더 예쁘게 머리를 땋아주고 색깔 취향이 비슷해서 취미활동을 하다보니 이모와 거리감도 적절, 친밀감도 확대되며 감정도 좋게 확장될 수 있다. 하지만, 이모가 아이가 아플 때 병원을 데려가거나, 돌봄의 책임을 엄마처럼 하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간단히 ICF의 분류 중 대인관계 일부만 올려보았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
나랏말쌈이 듕귁과 달라서 만든 훈민정음처럼,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기능적인 측면을 공통적인 언어로 소통하자고 만들고 개발한 분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