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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4일 금요일

피할 수 없는 경험. 경험은 가치가 있다.

아주 오래된 엄마의 한쪽 눈 이상. 안과를 오래 여러곳을 다녀도 이런저런 병명만 바뀌었고, 피부도 부어 피부과도 오래 다니셨다. 결국 큰 병원에서 CT를 찍기로 한 날, 아버지가 엄마에게 이 병원에서 찍지 말자고 대기 중에 나오셨단다.

서울에서 큰 안과 방문하고, 안과에서 3차병원 신경외과로. 신경외과 CT 검사에서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다시 안과. 안과에서 여러 검사를 힘들여하고서는 시력은 한쪽이 거의 없는데 아무래도 신경외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다시 신경외과로. MRI 검사를 하자 한쪽 시신경에 종양이 있고 중앙으로 번져있는 것도 발견되었다.

발견된 날, 신경외과 담당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제가 지난 번에는 실수를 했네요. 저 때문에 괜히 안과에 가셔서 힘들게 검사를 하셨네요.참 미안합니다.."
라며 사과와 위로를 해 주었다. 나로써는 아주 놀라운, 한번도 기대해 본 적인 없는 의사의 태도였는데, 매우 큰 위로가 되었고 감명을 받았다.

이후, 여러 가지 방법 중에 고민하는 과정에서 의사 선생님은 매우 상세히 각각의 방법에 대한 장단점을 설명하고 결국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는 결정을 설명할 때도 충격을 받으시는 엄마에게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뇌수술을 한다고 하면 많이 충격이 되시죠. 그런데, 이 종양은 수술로 도려내야만 하는 것이고, 그 결정은 환자와 가족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최선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역시 아주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가족의 입장에서, 환자의 입장에서 전문가라는 사람이 그냥 자신의 권위를 말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로써의 결정에 대한 권위를 직접적으로 느끼는 순간 신뢰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머니는 수술을 했고, 수술을 하기 전에 거의 신경학 강의에 가까운 설명을 듣고 수술방법을 왜 눈쪽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측두엽으로 들어가는지에 대한 외모보존의 가치와 안전한 수술을 위한 시야확보의 의미도 설명을 들었다.

어머니는 뇌수술을 하는 것, 그 때문에 머리를 깎는 것이 눈 신경 속의 종양보다 속상할 때가 있으신 듯 하다. 그렇지만, 눈 앞으로 수술을 하다가 혹여 동안신경이나 동안근육에 손상이 되는 일이 생겼다면 그게 더 속상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접근하는 방법이 달랐고 성패 여부도 달랐겠지.

그런데, 결과에 대해, 그리고 결과를 위해 진지한 고민과 사과, 위로와 확신과 자신과 연민이 섞인 의료진의 설명은 가족으로써 환자에게 다시금 진지하게 위로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다시금 대략 20여년 전 아버지의 수술과 치료상태에 대한 의료진의 태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의료적인 행위는 같을 수 있지만, 행위에 대한 설명과 전문가로서의 고민을 통한 확신과 권위, 위로는 정말 별로 없었다..

차이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세월이 흘러 발전을 했기 때문인 것인지,
지방과 서울의 차이이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개별 전문가의 차이인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런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경험. 피할 수 없는 경험이었고,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어머니의 수술을 통해 선입견이 깨졌고, 새로운 것을 배웠다. 그리고 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마음, 위로 받을 수 있는 마음 또한 조금 더 생긴 듯하다.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 어쩔 수 없는 마음. 그러나, 그래도, 나아가는 마음.














댓글 1개:

  1. 담당의의 태도에서 우리 치료사들이 환자들에게 보여주어야할 모습이 보이네요. 권위는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판단해주는 것인 즉, 우리 모두가 권위적인 치료사가 아니라 권위있는 치료사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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