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을 일일이 심판과 재판에 회부할 수 없다. 개인의 삶에서 이런 재판과 송사에 휘말린다는 것은 여러모로 상처가 되고 시간과 금전적 소모도 클 뿐 아니라 많은 인간관계도 상하게 된다.
미국의 병원에서 소송건수가 늘면서 소송이 느는 요인 중에 먼저 격한 마음이 드는 환자와 가족에게 사과하지 않는 의료진의 태도가 크게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에, 2006년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는 공동으로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36개의 주에서만 시행하는 '사과법(Apologize Law)을 연방법으로 만들자는 칼럼을 썼다.
사과법은 사과하는 말이 불리한 증거로 채택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 한다.
사람의 관계가 송사가 되는 것은 정말 차후의 차후의 차후라야 한다. 그리고 이런 재판은 약자가 겪는 부당함을 호소할 길이 없는 경우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시시비비를 따져 이익을 놓치는 것이 손해로 보여 이를 따지려 재판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재판이 진창이 싸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배가 뒤집어졌고, 거의 300명이 사망하고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고 당일은 황사만 있었지 전혀 자연의 피해을 입을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그 사망 실종자의 대부분은 즐거운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다.
사고 당시의 신고는 선장과 선원에 의해서가 아니고, 응급 구조 지침도 따르지 않고, 가장 큰배란 명성이 무색하게 안전과 구명 장비도 모자라고 불능이었다. 이에 대응한 해경의 구조와 재난 대책 본부(어디냐!)의 수습은 말그대로 무능함 자체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 과정에서 사고라고만 알았다가 사고가 무능과 부패로 더 키워지고 게다가 이를 덮거나 회피하려 하거나 과잉 보도하는 모든 대상에게 분노하고 있는데, 게다가 대접 받으려는 평소 습관을 보이는 소위 상위 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만나게 되니 분노와 경멸감과 자괴감이 더 하늘을 찌를 뿐이다.
이런 극한 분노가 어떻게 가라앉을까..
이 민심이 가라앉지 않으면 이대로 폭도로 몰 것인가? 이 분노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아픔과 분노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바라겠는가.
사람들이 모여 살아 사회고, 사회가 형식과 체계를 만들어서 국가가 되었는데, 하나의 자연재해가 아닌 사고가 인재로 불거지다가, 시스템에 의한 재난으로 깊어지는데, 이 시스템에 권한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사태에 책임을 지기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이 아픈 마음을 위로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름이 '쿨하게 사과하라'라고 가벼운 느낌을 띄지만, 인간의 사과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다룬 책이 있다. 사과는 사태를 해결시키는 근본책은 안될지 몰라도 사태를 진정시키는 첫걸음이다. 해서, 사과는 내가 설령 직접 하지 않은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면 잘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흔히 사과하면 덮어쓴다, 진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생각은 몹시 원시적이고 유아적이다. 엄마가 바닥에 둔 바구니에 아이가 미끄러졌다. 그 때 엄마들은 우는 아이를 얼른 안으며 이리 말한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니까 이렇게 사과하는 것이다. 거기에 엄마가 잘못을 덮어쓰고 지는 상황이 들어맞는가? 부모는 그렇게 어린 아이가 예상하지 못해 다치는 일에 자기가 차마 알지 못한 부주의를 사!과!한!다! 그리고는 가르치고 함께 배운다. 해서, 경험있는 양육자와 함께 있으면 배우는 게 참 많다. 젓가락이나 연필은 끝을 상대방에게 향하지 않게 한다, 아이 옷은 품이 넉넉해야 덜다친다.. 등등..
사과는 많은 것을 내포한다. 사과의 잘못된 예가 있다. 공감 없는 사과. 사과의 대상이 모호한 사과. 사과하는 행위를 명확히 하지 않는 사과. 사과는 '미안하다'라는 말만 한다고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 참으로 미안하지만, 이런 사과는 안한 것만 못한 사과다. 단절을 부른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적반하장. 말이 다인줄 아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사태를 최악으로 만든다.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위대한 사람이다. 어떤 큰 파도도 감내하겠다는 대범함과 솔직함과 공감하는 미안함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반성과 성찰, 배움을 쌓는다. 그래서 사과로 인해 더 크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민이 되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미안하다 할 수 있는 이유는 진짜 부모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사과가 필요한 게 맞다. 그런데,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 벽치고 소극적이고 인위적인 앵무새같은 말에, 앞으로 전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부패와 무능함에 대해 덮으려는 통제행위는 절대로 제대로 된 사과라 할 수 없다. 국민이나 자기가 책임지는 조직의 구성원에게 사과할 수 있는 이유는 진짜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사과를 못한다면, 그 이유는 평소에 이 책임을 역할에 맞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사과를 못한다면, 그 이유는 평소에 이 책임을 역할에 맞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이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그 인생을, 평생을, 심판과 송사에 걸 지도 모른다.
그것이 몹시 슬프다.
쿨하게 사과하라. - 김 호, 정재승 저.
미국 사과법을 소개한 조선비즈 기사
작업치료사는 말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작업행동으로 그 사람의 작업을 본다. 이 때 말만으로 보지 않는다. 말이 일치하는지, 적절한지, 상대의 화두와 연결되는지.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