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치료의 중재과정은 '평가'-'중재'-'결과'로 이뤄진다. 작업치료 뿐 아니라, 대부분의 전문적인 일들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나 원하는 것이 가능한지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분석하여 필요한 '접근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검토'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작업치료에 있어 이 과정은 '작업'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이 필수적이며, 그 때문에 작업치료를 실시하는 과정이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작업치료 중재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작업'에 기반해야 하고, 그 작업은 반드시 그 사람을 중심에 두고 협력적으로 정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 사람이 중심이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실 신경학적으로 기능을 소실한 사람이 그 신경 기능을 살려야만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자 한다고 희망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업치료사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기에, 최대한 가능한 사실과 긍정성을 바라보고, 지금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하고자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은 작업치료 중재과정의 첫 단추와 같다. 이를 위해 작업치료사는 개인의 삶에는 작업(Occupation)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하고 사람을 만나며, 이 전제는 작업치료사에게 있어 중요한 신념과 같다. 대신, 무엇이 하고 싶은 작업인지를 찾는 것은 경우에 따라 정말 어렵다. 가치가 다르거나, 능력의 차이가 있을 때 작업 목표를 공유한다는 것은 참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정하지 않으면 목표 자체의 당위성이나 성취도를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종종 어렵다는 말은 쉽게 한다. 당연히 어려울 수 있다. 작업 목표는 일종의 인생의 목표까지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추상적인 언어로 이상화 되고, 그렇게 목표가 추상적인 언어가 될 때 너무나 어려운 것이 된다.
작업적 목표는 추상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으나, 개인의 생활 안에서 작업치료 중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작업이 있을 것이라는 신념과 달리, 일상의 활동을 파악하고 프로파일링 한 다음의 작업 목표를 세우는 과정은 구체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다. 이 때의 과학이라는 말이 기계를 떠올리게 하고, 줄자나 각도계를 떠올리게 한다면, 환원주의의 모순에 빠진다. 논리와 일관성이 중요하다.
목표를 쉽게 쓰고 적지는 않았겠지만, SOAP의 체계에서 작업치료 목표를 결정할 때, 우리들이 쓰는 목표는 대체로 '근긴장', '감각', '좌우차', '균형', '미세운동', '시지각', '인지', '기억력' 향상이라는 말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환경 조정', '보조도구 적용' 등을 목표로 기록하기도 한다. 이는 작업적 목표가 아니다. 작업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중재 단위의 신체나 환경 요소(body factor / environmental factor)적 전략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전략을 목표와 혼동한다는 것이고, 전략에서 사용하는 각도, 점수의 단위를 과학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이 요소적 전략이 성취된다 해도 작업적 목표와 연결되지 않으면, 전혀 작업 향상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수 많은 연구들이 결론짓는다.
작업치료사가 영어 공부를 한다는 특정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영어를 공부하는 목표를 작업적으로 정하는 것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외국 여행을 할 때 혼자 식사를 주문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서라거나, 외국 친구를 사귀어서 일상이나 취미에 대해 30분 정도 대화를 하면서 차를 마신다거나, 학회에서 영어로 포스터나 구두 발표를 한다거나, 하다 못해 토익을 특정 점수에 도달하기로 한다는 것이 작업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 목표는 영어 선생님이 정하는 목표가 아니다.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하기로 한 작업치료사 스스로가, 자기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목표가 정해지면, 그 다음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중재 전략이 개인마다 다르게 정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여행을 위한 목표를 가진 사람은 여행 중에 벌어질 상황을 연습하고, 예측하고, 기록이나 관련 자료를 보유해서 여행을 할 수 있겠다. 학회에서 영어로 발표를 하기로 했다면, 발표하고자 하는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고 영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교정하고 발표를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실천 전략이 '새벽 영어학원 등록해서 다니기'라거나, 'vocabulary 22000 외우기'라고 한다면 이는 뜬구름 잡기다. 실천 전략이 달성될 목표와는 동떨어진 '별에서 온 그대' 같다.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별에서 온 그대'같은 영어공부를 해 왔나... (토익이 만점에 가까와도 좋아하는 영시 하나 없는 영문학도, 외국에서 살다 와서 외중, 외고를 다녀서 영어를 할 수 있어도 우리말로 통역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실제로 보았다.)
이런 상황은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목표 자체가 구체화 되지 않아도 벌어진다. 내 삶에서 어떤 이유로 영어를 해야 하는지가 정해지지 않고 막연히 스펙으로써만 영어를 공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물론, 꾸준히 공부해 왔기에 우연히 상황에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성취감을 얻는다면 다행이지만, 목표가 없이 그냥 막연한 실천을 한다는 것은 과녁 없는 활쏘기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어떤 남성이 영어로 이야기하면 멋있어 보이니까, 여자들 앞에서 잘 보이기 위해서 영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아주 구체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 전략도 구체적이다. 영시, 팝송 가사를 줄줄 왼다. 그리고, 목적한 바를 위해 노래방에서 팝송으로 멋드러지게 노래를 하고 박수를 받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어 목표를 달성했다.
전달을 위해 작업적 목표를 영어 공부에 비유했지만, 사실 작업적 목표를 찾는다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찾아야 하고 구체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작업적 목표는 없는 채, 그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여하는 감각, 운동, 지각, 인지, 심리 기능과 환경 조정은 아무 소용없는 수치 남발에 그치고 만다.
지금까지 우리는 작업적 목표를 세우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여했는가?
클라이언트를 중심으로 클라이언트의 작업적 목표를 세우는 데 있어, '잠', '일과의 여가', '놀이', '가사', '돌보기', '일하기', '먹기', '가꾸기', '사귀기', '만나기', '~~하기', '어디 어디 가기'와 같은 묘사가 담기도록 작업치료사로써 얼마나 노력하는가?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한다.
** 작업 목표와, 작업 우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OTIPM 이었습니다. 그 모델을 정리하고 실천하게 지지해 주시는 Anne Fisher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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