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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1일 목요일

초고령화 시대의 통합돌봄, 장애 인구를 위한 가활/재활 지원을 위한 #의료기사법 개정의 시대적 요구

 

초고령화 시대의 통합돌봄, 장애 인구를 위한 가활·재활 지원을 위한 의료기사법 개정의 시대적 요구

– 작업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 본 6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의료기사법을 바라보며 (동아시아 타국과 비교하기에도 참 부끄럽지만..)

건강은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오랫동안 우리는 건강을 병원 안의 문제로 이해해 오고 있다.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고, 회복하는 일. 의료는 분명 그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른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초고령사회, 만성질환의 증가, 장애인의 지역사회 삶, 독거와 돌봄의 문제, 그리고 병원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는 집과 지역사회에서의 생활, 그리고 관계. 건강은 더 이상 병원 안에서만 만들어지거나 지켜지지 않는다.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삶 속에서 살아간다. 밥을 먹고, 씻고, 이동하고, 잠을 자고, 가족과 관계를 맺고, 학교와 직장과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병원은 그 삶의 일부를 돕는 공간이지, 삶 자체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건강은 단순히 질병의 유무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다시 말해 기능(function), 참여(participation), 그리고 의미 있는 일상(occupation)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의료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급성기 치료 체계를 갖고 있다. 질병관리는 손꼽는 수준이며 응급의료, 수술, 중환자 치료, 질병 진단과 약물 치료는 매우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병원 치료 이후의 삶은 누가 책임지는가?

이 질문 앞에서 작업치료를 포함한 재활과 기능지원(기능돌봄이라고 편의상 칭하자; care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많은지..) 의 의미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건강은 ‘질병 치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의사는 건강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이 점은 분명하다.

질병을 진단하고, 의학적 위험을 판단하며,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의료의 핵심이며 의사의 중요한 전문성이다. 뇌졸중, 파킨슨병, 암, 정신질환, 발달장애, 골절, 심장질환은 의학적 평가와 치료 없이는 논의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건강은 의학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뇌졸중 이후 편마비가 있는 노인을 생각해 보자.

의사는 진단을 하고 혈압과 약물을 조절하며 재발을 예방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다시 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사용하고, 안전하게 이동하며, 배우자와 관계를 유지하고, 집 안에서 넘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자폐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진단과 의학적 관리는 중요하지만, 학교 참여와 감각조절, 또래와의 상호작용, 가족과의 생활은 의학적 처방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건강은 결국 삶 속에서 작동하는 기능과 참여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통합돌봄 시대의 의료는 ‘누가 더 많은 권한을 갖는가’보다 누가 어떤 책임을 맡고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묻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통합돌봄 시대, 작업치료는 어디에서 필요한가

작업치료는 단순히 치료실 안에서 손운동을 하는 직업이 아니다. 작업치료는 사람이 자신의 삶 속에서 수행(performance)하고 참여(participate)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전문영역이다.

그 필요성과 의료와의 관계를 표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작업치료 업무 영역의사처방 필요성지도 필요성의뢰·협력 적합성설명
급성기·수술 직후높음일부높음의학적 안정성과 금기 확인 중요
신경계 재활높음낮음높음진단·예후는 의학, 수행·인지·참여는 OT
ADL/IADL중간낮음매우 높음실제 생활기능 중심
환경조정·보조기기중간매우 낮음매우 높음생활환경·안전·접근성
발달지원중간낮음높음놀이·감각·가족·학교
학교·직장 참여낮음매우 낮음매우 높음교육·사회참여
방문·재택 OT중간현실적 지도
어려움
매우 높음지역사회 기반
수행 모니터링
·손상 예방
낮음~중간낮음높음낙상·인지·생활변화 감지
건강증진·웰니스낮음매우 낮음높음기능유지·노화예방

사실, 이 표를 정리하면서 '처방'과 '의뢰'가 더 필요하고 '지도'라는 개념이 더욱 모호했다. 지도? 환자의 신체, 일상 기능에 대한 작업치료를 어떻게 [지도]하는 것이 가능한지? 작업치료사에게 의사는 어떤 식으로 '지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모델이나 가이드나 시범이나 내용이 존재해야 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게 작업치료의 내용을 의사가 배운다는 의미인데, 그것이 타당하며 가능한가?가는 깊은 의문이 계속 맴돌았다. 

이 표를 정리하면서 내려지는 결론은 모든 작업치료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처방’, ‘지도’, ‘의뢰’는 같은 말이 아니다

현재 의료기사법 논의에서 계속 문제제기하는 것은 의사의 ‘지도’라는 개념만 있다는 점이다. 처방이나 의뢰라는 개념을 담지 않고 있다. 처방과 의뢰는 필요 없는가? 

아니다. 지도, 처방, 의뢰는 사실 서로 다른 개념이다.

처방(prescription)은 의학적 필요성을 결정하는 행위다.
지도(direction/supervision)는 특정 행위를 감독하거나 관리하는 개념이다.
의뢰(referral)는 특정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직에게 평가와 개입을 요청하는 협력 구조다. 이 세 개념은 동일하지 않다.

그리고 의료의 발전은 오히려 이 차이를 더 분명히 해 왔다.

재활의학과 의사가 뇌졸중 환자에게 재활 필요성을 판단하고 처방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후 실제 식사훈련을 어떻게 구성할지, 어떤 보조기기를 사용할지, 집 안 환경을 어떻게 조정할지, 가족에게 어떤 전략을 교육할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작업치료 전문성의 영역이다. 재활의학 의사의 역할이 있고 재활의학에는 작업치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치료, 임상심리, 사회복지, 간호 등등 다영역이 재활을 위해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활의학 의사가 모든 분야의 특정행위를 감독하거나 관리하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이게?! 오... 정말 그렇다면, 재활의학 의사만 있으면 이 재활이 다 이뤄진다는 의미 아닌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교과서에도 계속 '팀 접근'이 재활의 중요한 방식이라고 누누히 강조한다. 

'협력', '협업', '의뢰'. 이는 의사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전문성을 더 명확히 하는 일이다.

좋은 의사는 모든 것을 직접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자신이 책임지고 무엇을 적절히 의뢰할지를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느 분야나 그런 것 아닌가? 나를 아는 사람이 타인을 알고, 타인을 만나 알게 됨으로써 나를 아는 것. 


병원 밖의 건강을 위해

특히 방문재활과 재택 작업치료, 학교나 지역사회의 지원과 돌봄은 이러한 논의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방문 현장에서 의사가 실시간으로 모든 치료를 지도하는 구조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대부분의 실제 지역사회의 작업치료 현장에서는 필요한 경우 의학적 상태를 확인하며 의료기록과 확인, 처방을 확인하며 보고-공유하고, 이에 문제가 없고 건강과 참여를 돕는 작업참여의 평가와 수행분석을 진행하며 이를 토대로 중재와 모니터링, 코칭이나 상담을 진행한다. 진단과 장애가 없는 사람을 지원할 때도 있다. 학교 체계에서 그러하다. 소위 도전행동 또는 문제행동이 교실의 수업을 방해할 때, 그 중심에서 교육을 위해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 중에는 진단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상황 조정이 필요한 경우가 더 많다. 그 때 어려운 상황을 교사와 타 전문가들과 심층적으로 분석하면서 우리들은 알게된 여러 분석정보들을 공유하고 중재를 협력적으로 실행한다. 만약 이 때, 진단적 이상이 발견되면 신경정신과 등의 의료연계를 진행하는 협력 구조가 작동한다.

이러한 구조가 이미 상당히 다양한 지역의 현장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하고 있는 우리들의 행위. 즉, 문제는 처방, 의뢰, 협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법과 현실 사이의 언어가 충분히 정교하지 못하다는 것이 현실적인 장벽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개인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하지만, 법이 없기 때문에 근거가 없고, 제도 안에서는 실행되지 않는다... 이를 개선하고 포괄하자는 것을 누가 방해하는가. 


의료기사법 개정은 직역 싸움이 아니라 건강 구조의 전환이다

의료기사법 개정 논의는 어찌 보면 직역 갈등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초고령사회와 통합돌봄의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법이 의료보조원법에서부터 출발해서 60년동안 8개의 직역을 묶어놓고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혹 의사들의 눈에는 의료기사들이 반항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이것은 ‘누가 누구를 지배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 중심 건강체계에서 삶 중심 건강체계로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건강은 의사 혼자 책임질 수 없고, 작업치료사나 특정 직역 혼자 책임질 수 없다. 절대로! 의사가 인간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되, 그 영향력이 30% 이상이나 될까? 작업치료사라도 한 사람의 건강에 있어 중요한 5%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혼자 생각해 보는데...(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직역이 모든 일을 다 하면서 결국 그 사람의 2-30% 영향력이 우리들의 5%와 협력하면 50%가 될 수 있는 시너지를 혼자 감당하다가 붕괴되고 고립되어 그 중요한 2-30%는 사그라지고 고립과 생활박탈을 만들기도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서로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처방·지도·의뢰와 협력의 구조를 정교하게 만드는 일이다.

의학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삶과 기능, 참여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


마무리하며

건강은 병원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건강은 결국 삶 속에서 완성된다. 오늘날 의료는 더 많은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협력은 모호한 언어보다 분명한 책임과 상호존중 위에서 가능하다.

의료기사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특정 직역의 권한 확대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초고령사회와 장애인의 삶 속에서, 국민의 건강을 보다 현실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의사에게는 의학의 전문성이 있다. 작업치료에는 삶과 수행, 환경과 참여를 다루는 전문성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전문성을 통해 국민의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도라는 단어가 아니라,

더 정교한 처방, 더 책임 있는 의뢰, 더 성숙한 협력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논의에 의료계와 재활계, 정책과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이제, 장애인 권리보장법이 시작되었다. 장애 당사자가 원하는 건강과 행복은 의료처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사례들이 생길 수 있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이 타당하다고 볼 것인가. 의료만이 옳다고 할 수 있나? 과연? 

#의료기사법개정하라! 2026.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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