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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수면과 정의로움에 대해

치과를 오랜만에 정기검진을 이유로 다녀왔다. 기다리고 스케일링을 하고 검진을 받는데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다녀와서 이틀 정도 오후에 평소보다 졸리고 피곤함을 느꼈다. 중간에 휴일이 있어서 낮에 짬이 날 때 잠이 들었는데 내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란다. 스케일링을 한 나의 이는 내 혀가 계속 확인하고 있다. 너무 매끄러워 달라진 이와 익숙해지려는 듯.
여러 가지 이유로 일상과 달라진 시간과 장소와 병원검진을 통한 스트레스가 피곤을 가져온 모양이다. 어쨌던, 몇일 징검다리같은 휴일 낮에 잠을 잤더니 몸도 머리도 개운하다.

잠. 아동작업치료를 하면서 만나는 부모님과 아이들의 잠에 대해 여쭤보면, 참으로 어려운 것이 '잘 자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능동적으로 하고자 하는 의미있고/또는 목적있는 활동을 ['occupy'하는 '작업(Occupation)']이라고 할 때, 깨어 있는 동안의 작업활동이 어려운 매우 큰 이유 중 하나가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작업이라는 말이 어려우면 '활동'이라고 하자. 활동을 발달적인 측면에서 바라 볼 때,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집중하는 활동은 '잠'이다. 어떤 사람이 잠자는 갓난 아기를 '이제 깰 때가 되었으니 일어나라'고 하며 흔들어 깨우는 데 집중할까? 단지 모든 어른들은 아기들의 '잠'을 재우는 데 노력을 모으고 집중한다. 그것은 어른들의 IADL(타인을 돌보는 복합 일상생활활동)이니, 아기를 작업적인 존재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른의 IADL 수행능력이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잠은 정말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자다가 대소변을 봐야만 하는 아이, 약간의 소리나 빛에도 깨는 아이, 잠이 들기가 어려운 아이, 자는 중간에 깨서 힘들게 소리 지르는 아이들이 있다. 집 주변에서 나는 자동차 소리, 가로등 불빛에 깨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조용해서 잠을 못자기도 한다. 계절이 변할 때 수면 사이클이 변하는 아이들도 많다. 천식과 아토피마저 합쳐지면, 잠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기침과 몸을 긁는 증세도 심해진다. 아이만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도 잠을 못잔다. 모두 퀭한 눈으로 아침을 맞고 그렇게 맞은 아침에는 식사도 맛이 없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기운을 차리기 어렵게 하루를 시작한다. 잠. 정말 너무나 중요하지 않은가?

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잠은 생명과 관련된다. 그리고 뇌의 건강과 직결된다. 안정된 뇌활동을 위해, 적절한 각성(뇌가 내외부 자극에 의식을 발위할 수 있는 최적의 신경상태)을 갖기 위해서 적절한 수면은 반드시 필요하다. 수면을 할 때는 몸은 쉬지만, 뇌는 쉬지 않는다. 수면을 위한 신경활동은 의식을 아래로 가라앉게 하고 수면활동을 위주로 가동된다. 이 때 뇌는 신경의 정보전달을 신체와 장기에 연결하지 않지만, 뇌 안에서는 열심히 정리정돈하는 활동을 하는 시간이 수면 시간이다. 그래서 수면은 활동이다. 수면활동은 자체의 주기가 있다. 눈을 빨리 움직이는 얕은 수면시간에서 깊은 수면까지 오가는 4-5번의 주기를 통해 사람의 하루 수면활동 역시 낮의 활동처럼 패턴을 보인다.

이런 저런 기회로 초등학교의 부모님들을 만나는 시간을 몇 번 가졌다. 인간의 작업 내용과 발달과정을 소개해 드리고 질문을 했다.

"아이들은 몇 시에 잠을 자나요?"

9시부터 1시 반까지 다양하다. 장애나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일반적인 아이들의 부모님들께 한 질문의 답변이다. 초등학생들의 수면 양은 어느 정도 되는 게 적당할지 재질문을 했다. 여러 사람이 답을 할 때는 통계적으로 정답이 나올 확률이 높다. 대체로 9-10시간 정도가 아니냐고 이야기를 하신다. 비슷하다. 미국 수면재단의 보고에서는 (기타 수면 관련된 연구는 매우 많고 일관적이다) 초등학령기인 5-10세 아동은 10-11시간, 11-17세 청소년기는 8.5시간에서 9.25시간 정도의 잠을 평균수면시간으로 이야기한다. 중고등학생이 8-9시간 정도 자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른은 7-9시간 정도가 평균수면시간이고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줄어든다.

다시 이야기를 해 간다. 9시에 잠을 자면 몇 시에 일어나느냐고. 그랬더니 9시에는 별로 안 잔단다. 그러면? 주중에는 숙제하느라 빠르면 10시, 10시반. 주말에는 TV를 보느라 10시반에서 11시 넘을 때가 있단다. 국민이 보는 프로그램 개콘은 종영시간이 10시 55분이다. 아이들이 보지 않도록 뒤로 늦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다음날 전날 본 개콘 이야기를 교실에서 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등교시간은? 보통 8시 30-40분인데, 등교를 위해 10-2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집에서 늦어도 8시-8시 20분 사이에 아이들은 나서야 한다. 그러면 아침의 일정한 활동인 '둥근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먼저 이를 닦고.. 세수할 때는 깨끗이, 거울 보고 옷을 입고.. 아! 밥도 먹어야지요, 대소변 볼일도 아침에 봐야 하지 않나요? 적어도 소변은? 가방 매고 신발 신고 인사하기'를 하기 위해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30분에서 1시간이다. 우리집 아이들은 45분 걸린다. 그것도 처음에는 70분 걸리던 것이 4-5년 지나니까 조금씩 단축되어서 45분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가? 일단, 우리집 기준으로 아침 활동 소요시간을 45분 잡으면 아이들은 7시 15분에서 35분 사이에 일어나야 한다. 기상시간은 학교를 갈 때는 '고정'이다. 늦으면 지각이니까. 기상시간은 '습관'으로 패턴화 해야 한다.

그러면 9시에 자는 아이는 수면시간이 10시간 정도, 10시에 자는 아이는 9시간, 11시에 자는 아이는 8시간. 12시가 넘어가면 어른의 잠시간으로도 모자라는 7, 6시간으로 줄어든다. 앞서 기술하였지만, 세계 초등학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10-11시간이다. 더불어 권장 수면시간이기도 하다. 9시에 잠을 자야 10시간을 잘 수 있다. 8시에 자도 괜찮다는 거다.

외국과 비교하는 데는 이제 짜증도 나고 이골도 난다. 하지만, 비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국내에서 외국인을 만나서 그 자녀들을 작업치료 중재를 할 일이 있기 때문인데, 그 때 그 외국아이들의 부모님들과 인터뷰를 할 때 100% 아이들을 8시30분 이전에는 재우려고 하는 데  놀랐고, 그것이 놀라운 나 자신이 다시 놀라워진다. 내게 아이들의 잠이 9시 이전에 가능하다는 것, 필요하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마음의 반문이 일었다. 다시 외국인 부모님들과의 인터뷰로 이야기를 되돌리면, 7시 30분부터 아이들을 재우는 집들도 있다. 그 대신 아침은 일찍 시작하는 편이다. 7시 30분 8시면 우리나라 가정의 저녁식사 시간인 경우도 적지 않다. 대신, 우리 경우는 외국인들보다 자녀들의 아침생활을 조금 늦게 시작하는 듯 하다. 이건, 시간적인 패턴이니 좋고 나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단, 수면의 양은 분명 우리나라 아이들이 불규칙적이고 적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규칙적이고 적당한 수면에 대해 사회적으로 가치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도 명백히 존재하는 현상이다.

왜 우리는 잠을 가치있게 생각하지 않을까?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가 잠드는 시간을 아까워하는가? 일면 그렇다. 그 이유는? 어릴 때 친척들 중 공부를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 '인생에서 하루에 8시간을 자면 하루의 1/3을 자는 건데, 내 인생 1/3을 잠으로 낭비한다는 건 너무 아깝다'는 말씀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분들은 집안에서 칭찬을 받고 귀하게 대접받았다. 그리고 중고시절 내내 '4당5락'이라는 말, 밤새며 공부하는 친구들의 수확과 어른들의 칭찬도 떠오른다. 무슨 약도 있었는데.. 타임인지 뭔지, 잠을 자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잠을 자지 않고 애쓴 것은 무엇을 위한 노력들일까? 성공일까? 성공이겠지. 하여튼 잠에 대해서는 가치를 두지 않았던 주변을 보고 자랐다.

나는 너무 잠을 잘 자고 잠잘 때 몸부림도 심해서, 어릴 때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고도 했고, 책상 아래 들어가 있기도 했고, 별의 별 꿈도 참 많이 꿨던 기억이 있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잠을 자다가 아기가 압사한 여인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는 것 아닌가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나 개인의 잠은 임신과 출산 이후 매우 변했다. 연속적으로 5시간 이상은 자지 못하고 반드시 중간에 깬다. 여성의 잠이 임신기부터 변하는 것은 매우 보편적이다. 그리고 불면증이나 불규칙적인 수면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아기의 불규칙적인 긴 잠 때문에 함께 적응을 하게 되기도 한다. (잠시, 여성의 잠에 대해서도 나중에 생각해 봐야겠다는 다짐. 임신 출산을 한 여성의 남편들이 옆에서 수면 패턴은 깨지지만 눈은 뜨지 못해서 실제로 잠은 잘 자지 못했지만 타인은 그걸 몰라주며 야속해 하는 것도 더불어.)

어느 고등학교 교실의 급훈이 '한시간 덜 자면 배우자 얼굴이 바뀐다'라고 한다. 잠보다 깨어 있을 때의 열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의 한 단면이다. 깨 있을 때 몰입하는 열심이 몰입하는 그 일 자체의 가치나 재미라기 보다는 성과를 통해서 사회적인 지위나 획득하는 외부적 보상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중고생 시절은 뇌의 변화가 크기 때문에 무척잠을 잘 자야 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입시를 위한 각종 학업(학교와 학원의 숙제과업) 때문에 8-9시간 자야 하는 신체적 요건을 사회적 분위기가 5-6시간을 자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간다. 생물적 요건과 사회적 요건이 부딪히는 갈등상황에서 생물학적 요건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전무하다. 흠. 아동청소년의 수면시간을 무시하는데, 이들이 자라 사회인이 되었을 때 그 노동시간을 지킬까. 이런 생각이 든다.

수면의 패턴이 안정적이어야 각성 상태의 활동패턴이 안정된다. 물론 반대로 낮의 활동상태가 안정적이고 적당해야 수면이 좋은 패턴을 갖게 된다. 그만큼, 잠은 인간의 신경 건강 뿐 아니라 활동 건강에 큰 상호영향을 미치는 신경학적, 건강학적, 작업활동적인 가치가 있다. 요즘, 아이들의 건강한 활동, 즐거운 놀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른이 늘어나고 있음을 체감한다. 더불어 수면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잠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을 맞추고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에는 '죄책감'이 가득하고 마음 아파하는 느낌들을 더욱 체감한다. 그건, 아이들의 잠을 지켜주지 못하고, 심지어 잠이 중요하다고 의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의식과 사회에 대한 '정의롭지 못함'을 이제서야 깨닫기 때문이라 믿는다.

아이들의 건강한 잠을 위해, 어른들이 각성해야 한다.
어른들도 자기의 건강한 잠을 지키자. 지켜야 한다.

이런 글을 밤에 쓰고 있는 나는.. 낮에 잠을 잤고, 또랑한 각성된 따끈거리는 머리속의 생각이 이것을 글로 남겨야만 잠을 자겠다는 활동욕구가 강해서라 생각된다. 수면에도 평소의 tonic한 잠이 있고 일시적인 phasic한 잠이 있어서, 지금은 phasic한 일시적 수면변화에 나를 노출하고 있다. 이는 평소의 tonic한 수면이 튼튼해야 가능하다. 좋은 평소의 잠. 좋은 잠은, 아무런 도구나 도움 없이 잠이 들어서 개운하게 깰 수 있는 자신의 수면 시간 파악에서부터 비롯된다. 좋은 잠을 자자. 적절한 잠. 너무 많이 자도, 너무 적게 자도 질병과 사망의 요인이 된다고 한다. 낮의 수면이 몸에 맞는 사람도 있고, 개운한 낮잠이 더 중요한 사람도 있어서 자기 잠의 패턴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잠자는 존재로 태어나 밤에 잠을 자고 해가 뜰 때 깨서 활동하는 동물로 자라가야 하고, 그래야 점차 활동과 자기의 욕구에 따라 잠시간과 패턴을 파악해서 조종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다.

좋은 수면활동은 좋은 작업활동의 원동력이 된다(역 명제도 성립한다). 아이들은 잠을 자는 능동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어른과 사회가 '재워주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수면활동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다. 아무리 진보적인 교육과 활동을 해도, 좋은 신앙을 가져도, 밤에 어른들이 이야기하고 어른을 위한 시간을 갖자고 아이들을 재우지 않으면 '정의'롭지 않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 활동 때문이 아닌 이유로 불면,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의학적 도움과 조언을 받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중 일부

하버드 의과대학 수면 연구소
영아 - 청소년 수면시간 연구(스위스)
미 수면재단
수면양과 사망에 대한 메타연구

앞으로 더 깊이 볼 자료

작업적 정의와 클라이언트 중심의 임상: Elizabeth Townsend 와 Ann A. Wilcock



잠에 관련된 말말말.
    • 자는 벌집 건드린다.
    • 잠이 보약이다.
    •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은 인생을 망치고, 잠을 아니자는 사람은 건강을 망친다.(http://befreepark.tistory.com/799 비프리박님의 블로그에서)
    •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시 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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