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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일 목요일

작업적 정의로움 (Occupational Justice)

작업적인 정의로움 (Occupational Justic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캐나다 할리팩스 대학의 엘리자베스 타운젠트 교수님이 가장 많이 정리한 작업과학의 개념인데요, 
수전 돌이라는 연구자의 논문에도 그렇게 써 있었습니다. 작업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목적있고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한다면, 어떤 인간에게 자기가 목적이 있다고 하여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이 작업이 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제기였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활동을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 그 활동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경험하지 않으면 그 활동은 내게 의미가 되지 않고 내 활동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에서 어느 공간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가를 살피는 것이 작업치료사의 건강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말이죠.. 굉장히 많은 활동을 연령 이상 수준으로 경험하고, 본인에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도 쌓였는데(쌓여짐을 당해왔다는 것이 더 맞겠지요), 막상 본인에게는 결국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거나 전혀 만족스럽지 않으면서 무기력해지기만 하게 된다면.. 이 활동은 기술이 있더라도 과연 '작업(Occupation --> 내 인생을 Occupy하는 활동)' 이라 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의미있다고 해서 목적을 가지고 6살 7살 아이들에게 영어로 말하게 하며 수동태를 가르쳐서, 결국 그 아이가 영어로 말을 하게 되었던 경우도 있었지만, 적응이 어렵고 놀이가 어려워진 아이들이 많아졌죠... 그리고 요즘 놀이가 힘이 된다고 해서 대세가 숲과 놀이 유치원이라며 무조건 밖에서 놀이를 하는 교육장소를 찾는 부모님들.. 그래서 아이가 자연스러운 놀이보다는 인위적인 행위를 강요당하게 된다면, 놀이가 아니라 주입해서 터져나오는 부작용은 또 어디에선가 튀어나오겠죠. 

내게 목적이 있다 하여, 타인의 활동을 내 목적에 맞추는 것은 폭력이 되기 쉽다는 생각을 요 며칠 째 계속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린 결정이 아니라면, 타인의 강요에 흔들리지 않아야 겠고, 그렇게 사람을, 아이들을, 부모님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합니다. 

여전히 확고히 생각하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는 작업적으로 매우, 몹시 정의롭지 않은(Occupational Injustice) 사회라구요. 아이들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앞으로 평균 수명 길어져서 8-90 넘어까지 살 세월인데..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자연스러운 작업의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그나마 행동 방안을 생각해 보라면, .. 어떤 활동에 대해서는 우선 의미가 먼저, 목적이 그 다음 가치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공정한, 또는 정의로운 작업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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