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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3일 월요일

질병과 건강, 손상재활과 참여재활, 문제초점과 참여초점의 스펙트럼에서

1. 의학 관점의 양면

전통적인 의학에서는 사람의 건강 상태를 질병과 건강으로 이분화하여 질병이 있는 경우 ‘건강하지 않다’고 간주해 왔다. 이 관점은 질병의 원인과 발병에 집중하는 질병기원론(Pathogenesis)에 기반을 두고,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치료하여 건강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예를 들어, 암 치료에서 병리적 원인을 제거하여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 된다. 그러나 파킨슨병이나 뇌졸중처럼 노년기에 흔히 발병하는 질병들은 단순히 병인만으로 설명하거나 해결하기 어렵다. 병인학만으로는 병은 없앴을지라도, 삶은 규명하기 어렵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참혹한 경험을 한 사람들일지라도 삶의 건강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인간 건강성의 요인에 대해 Sense of Coherence(SOC)*이라는 개념을 정리한 유태인 의료사회학자 아론 안토노브스키는 건강 자체의 기원을 탐구하는 개념으로서 건강기원론(Salutogenesis)을 주장하였다. 이는 병리의 원인에 집중하기보다는 건강과 웰빙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요소들을 연구하는 관점이다. 

(Sense of Coherence는 '통합력' 또는 '조화감'으로 번역한다. 하지만 이 단어들만으로는 SOC의 모든 의미를 완벽하게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삶의 의미와 통합감", "삶에 대한 이해와 통제감" 등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안토노브스키의 SOC는 Resilience와 유사하며, 그의 개념은 긍정심리학,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 등이 연상된다.)



인간은 누구나 병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동시에 누구나 건강과 웰빙을 지니고 있으며 지향해야 한다. 따라서 의료는 병리학적인 접근과 더불어 건강과 웰빙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이 함께 필요하다. 건강기원론과 질병기원론은 의료의 양 날개로 간주해야 한다. 

2. 재활 관점의 양면

재활에서는 이러한 양날개의 관점이 특히 두드러진다. 급성기에는 손상된 신체와 신경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시되며, 손상 자체를 최소화하고 기능을 회복하는 재활이 필요하다. 그러나 손상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 병원 중심의 재활보다는 가정과 지역사회에서의 생활 회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만성기에는 단순히 손상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서서, 가정과 지역사회, 직장 등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삶의 재활'이 더욱 중요해진다. 아동기 장애, 발달장애의 재활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유아 초기에는 손상의 최소화, 신경발달 회복에 초점을 두나, 더욱더 근본적으로 장애가 있으나 없으나 존재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초점을 두어야 한다.

재활은 손상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의료적 재활과, 삶과 웰빙을 회복하는 사회적 재활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두 스펙트럼을 시소처럼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3. 행동에서 바라보는 양 측면

행동 문제에서도 유사한 이중적 접근이 필요하다. 도전 행동을 일으키는 환경적, 관계적 요인을 분석하고 도전 행동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문제 해결' 방식이 존재하는 반면, 삶의 참여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강점을 발견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 활동, 관계적 맥락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의미 있는 관계와 참여를 증진하는 지원과 중재방식이 있다. 이 참여 중심의 접근은 도전 행동의 문제를 줄이는 것에 앞서 사람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대체로 전통적(?)으로 재활 분야에서는 의료적 재활이 우세해왔고, 도전 행동 지원에서도 문제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는 병리학적 관점을 모델로 하여, 손상과 문제를 우선시하는 접근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다.

4. 긍정, 건강, 참여에 초점을 둔 새로운 시류 형성하기

의료와 재활, 그리고 행동 지원에서 병리와 문제 해결 중심의 접근이 오랜 시간 동안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건강과 웰빙, 그리고 참여를 중심으로 하는 접근이 더욱 부각되어야 할 시점이다. 병리와 병행하여 개인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건강을 증진하며, 의미 있는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이 삶 속에서 건강과 웰빙을 어떻게 유지하고 증진시킬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문제 행동을 줄이는 것이 목표가 아닌, 그 사람의 삶에 있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참여와 의미 있는 활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더라도, 인간은 죽음에 초점을 두며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흐름을 주도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이를 아론 안토노브스키는 삶의 강물*에 비유하였다.


(* 또 다른 강물모델: 마이클 이와마는 서양에서 기인한 작업치료 접근을 일본에 적용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발견하며 동양적 세계관을 반영한 강물모델을 개발하였다. 이는 재활 과학분야에서 영어권 외에서 개발된 최초의 실질적인 실천 모델이다. 안토노브스키의 강물비유는 강물을 개인 내적 성장에 초점을 두는 상징인 반면, 이와마의 강물 모델은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며 삶 자체의 내용과 삶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측면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활용하는 도구를 제공한다.)

Iwama, M. K. (2006). The Kawa model: Culturally relevant occupational therapy. Elsevier Health Sciences.


궁극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바는 긍정적인 건강과 웰빙의 측면을 병리학적인 접근과 병행하여 다루는 통합적 관점을 통해 사람 중심의 의료, 재활, 지원, 돌봄을 수행해야 하며, 특히 건강과 웰빙, 참여가 병리와 문제의 차선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된 중심으로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류가 그렇게 흘러가야만 개인의 건강과 참여를 증진하는 데 초점을 둘 수 있으며, 개인의 사회적 통합과 웰빙에 기여하는 실천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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