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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30일 목요일

도덕적 손상을 넘어: 군인과 직업인의 ‘작업적 긍지(Occupational Pride)’ 회복이 필요한 이유

이 글은 작업치료사이면서, 전방에서 군복무중인 아들의 엄마로써 들었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쓴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선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난 줄 알았다. 그 때 나를 지배하고 엄습한 그 두려움은 거대했고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다시보기로 본 다음 두려움은 분노로 바뀌었지만, 그 때의 두려움이 지나간 타격감이 몸의 감각으로 남아있다. 이역시 트라우마의 기전일 수도 있겠다. 부디, 그 두려움이 잘 소화되어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사랑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2024년 12월 3일 한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었지만, 다행히도 국회에서 이를 부결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 군 조직과 현장에 동원된 군인들에게서 도덕적 손상/상해(Moral Injury*) 의 증후가 보고되고 있다. 기사나 백선희 의원은 긴급토론회를 통해 "병장들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과정 속에서 도덕적 손상을 입었고", "군의 정신건강 지원 대책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고 하였다. 2025년 1월 18일자 한국일보에는 당장 계엄에 직접 동원된 군인 및 군간부 뿐 아니라 직접 관여되지 않았음에도 군인 신분자들의 마음이 표현되었다. 기사에는 "군복을 입기 조차 싫다", "뉴스에 군복 입은 장성들이 나오는 것이 창피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일부 군 최고위층 등이 저지른 12.3 불법 비상계엄은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키던 절대 다수 군인들의 마음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라고 쓰여 있다. 

(*Moral Injury: Jonathan Shay라는 정신건강의사가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을 치료하며 발전시킨 개념. 그의 저서 Achilles in Vietnam: Combat Trauma and the Undoing of Character(1994)에서 "권위 있는 사람이 신뢰를 배신하거나, 도덕적 신념을 훼손하는 행위를 목격하거나, 자신이 그런 행위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정의하였다. 이후 Brett Litz라는 심리학자는 이 도덕적 손상이 PTSD와 다른점을 구분하였고, 동료인 Wendy Sherman은 이 도덕적 손상은 참전 군인 뿐 아니라, 응급 상황 종사자, 의료진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개인적으로는 2024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제 8회 아태작업치료학회에서 영국출신인 뉴질랜드 작업과학자 Dan Johnson이 이 도덕적 손상이라는 렌즈로 참전 군인들의 회복과 갈등에서의 용서와 치유를 다룬 주제가 감명 깊었었다. 한국어로는 Moral injury가 도덕적 손상, 도덕적 상해로 사용되는데, 본문에서는 도덕적 손상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작업치료사로서 나는 이러한 도덕적 손상의 치유가 시급하다는 점에 동의하며, 여기에 더해 ‘작업적 긍지(Occupational Pride)’의 회복 또한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도덕적 손상. 손상의 개념만으로 충분한 설명이 될까?

앞서 인용했듯이 도덕적 손상은 권위자의 신뢰 배신, 도덕적 신념이 훼손되는 상황에 대한 목격,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고통을 말한다. 따라서 비도덕적이고 부당한 계엄령과 같은 국가적 사건에서 군인들이 느끼는 죄책감, 분노, 무능감(incompetence), 무력감(lethargy, flabby), 침체감(malaise) 등이 도덕적 손상의 결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더해 현재 한국 군인들이 겪는 무기력함이 도덕적 갈등과 도덕적 손상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는 신념이 훼손되는 상황을 겪지 않고, 여전히 신념을 유지하는 군인도 있었고 증언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 조직 전체를 감싸는 것처럼 보이는 무기력감은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과 자신의 일, 작업(Occupation)에 대한 자긍심이 손상되는 경험에서 오는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는가?' 즉 '이것이 당신의 '작업'인가?'라는 의미의 질문 앞에서

'군복을 입기 조차 싫다'라는 제목의 한국일보 기사에서 신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젊은 초급간부일수록 업무의 의미를 따지고내가 하는 일이 나의 개인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 "이번 계엄이 젊은 간부들의 소진을 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많은 군인들이 '자긍심'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도덕적 손상에 대해서는 주로 윤리적 회복과 심리적 치유(healing)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현재 군인들은 심리적 회복이라기보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는 느낌을 회복하는 것이 더욱 근본적인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엄에 직간접적인 관여를 한 군인들은 도덕적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겠으나, 군에 소속되어 있지만 계엄에 직접 동원되지 않는 군인들이 '군인이라는 업(業), 역할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고, 이런 감정이 조직 내에서 전염되듯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면 이는 작업적 자긍심(Occupational Pride)의 손상 또는 상실이라는 개념이 더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자긍심을 잃어버리면 군직에 대한 신념을 잃어 자기 작업에 대한 미관여(Occupational Disengagement) 상태로 빠질 경우, 연쇄적으로 삶의 의미 상실, 작업적 무기력, 사회적 위축, 개인적 우울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군인이라는 업(業)과 작업적 긍지(Occupational Pride)의 중요성

작업과학(Occupatoinal Science)의 관점에서 볼 때, 군인이라는 일(Occupation)은 단지 생계적인 일(job)이거나 고용(employment)상태를 넘어선다. 군인의 직업적 정체성과 군인정신은 그 자신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 업(業)을 쌓아가는 데(作) 대한 자긍심이 곧 '작업적 긍지(Occupational Pride)'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덕적 손상 뿐 아니라, 군인으로서 수행하는 활동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군인으로서의 역할을 재확인하고, 군인이 수행하는 단순한 활동 하나하나가 (어제 12시간 눈을 치웠다는 아들의 업무를 들으며 안쓰러우나 존경스러움이 교차했는데) 국민과 사회의 안전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개념은 군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경찰, 소방관, 의료보건인 등 공공을 위한 헌신을 주요한 가치로 삼는 직업군에 적용될 수 있다. (작업치료사 역시 자기 직업에 대한 긍지가 있어야 하는 직업군에 해당한다.) 이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적 긍지를 바탕으로 헌신하고 있다. 

작업적 긍지(Occupational Pride)의 회복이 필요한 이유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 따라서 '도덕을 회복한다'는 개념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작업적 긍지'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군인 뿐 아니다. 많은 직업인들이 도덕적 손상을 경험할 수 있다. 자칫 이번 계엄에는 경찰이, 소방관이, 법률종사자들이, 정치종사자들이, 경호종사자들이 이 도덕적 손상의 갈림길을 오갔으며 오가고 있다. 도덕적 손상을 중요하게 다루는 동시에,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없다'는 무력감이 작업적 무력과 미관여로 이어지는 현상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향후 어쩌면 우리는 도덕적 손상과 작업적 긍지를 연결하여 연구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한 방향일지 모른다. 단지 심리에 초점을 둔 상담을 넘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직적이고 사회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깊고 진하게 든다. 


군인들이 다시 군복을 자랑스럽게 입을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의 역할과 작업을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작업적 긍지'를 회복하는 과정이 지금부터 시작되기를 바란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는 인구에 대한 생각도 평소에 많으나, 이 이야기는 다음에 정리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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